관행처럼 되어 있는 복토와 심식의 피해
흙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다.
우리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회귀사상 때문일 것이다.
이는 생명의 기반이 되는 흙에 대한 우리 민족의 각별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흙은 바위가 부서져 오랜 세월 동안 풍화 과정을 거쳐 생긴 산물로 식물생육의 터전을 마련한다.
흙의 종류와 성분(흙의 화학적 성질에 해당함)은 뿌리를 내리는 식물의 종류와 생장을 결정하며, 흙의 상태(흙의 물리적 성질에 해당함)는 식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나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흙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50cm 깊이로 복토되어 밑동이 잘록해진 정이품송의 모습이다. 복토된 지 10년 후에 흙을 일부 걷어냈지만 건강도 나빠졌다.
농사에는 객토라는 것이 있다.
객토(客土)란 그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에서 흙을 가져와 토양을 개량하는 것이다.
계속된 농사로 땅이 척박해질 때 외부에서 좋은 흙을 가져와 쟁기로 갈아엎으면서 윗흙과 섞어준다.
객토는 소량의 흙을 섞기 때문에 땅이 높아지지 않고, 미량원소를 보충하고 토양산도를 중화시키기도 한다.
이른 봄에 객토가 끝나면 비로소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시작한다.
토목공사 중에는 성토라는 것이 있다.
성토(盛土)는 낮은 지역에 외부에서 대량으로 가져온 흙으로 땅을 높게 하는 것이다.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저지대와 늪지대, 쌀농사를 짓던 논, 그리고 소금기가 많은 바닷가처럼 지대가 낮은 곳에 주로 성토를 하며, 성토한 곳은 매립지로 불린다.
구릉지대 같은 경관을 조성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둥글게 성토를 하면 마운드가 된다.
나무와 조경수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복토란 것이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객토, 매립, 성토, 마운드는 나무가 없는 곳에 흙을 가져와 섞거나 덮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 지역에 나무가 이미 자라고 있었다면 위와 같이 흙으로 덮는 행위를 복토(覆土)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이처럼 복토란 단어는 나무의 존재 여부에 따라서 생겨난 용어이다.
복토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 있는 나무뿌리 위에 흙을 덮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복토가 뿌리 생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복토는 살아 있는 나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토목과 조경공사에서 나무 주변에 복토를 했다면 복토가 아마도 나무에게 도움이 되거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일 것이다.
복토가 나무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농사에서 객토가 도움이 되는 것을 그대로 연상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나무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은 나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과거에 복토한 나무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복토가 나무에게 생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복토는 세계적으로 흔하게 이뤄지는 현상이면서 그 잘못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복토 후에 나무가 서서히 반응을 나타내며, 수년간 혹은 10년 이상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생물은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호흡을 한다.
식물의 광합성은 낮에만 진행되지만, 호흡은 낮과 밤에 모두 이뤄진다.
나무뿌리는 지상부의 잎과 마찬가지로 쉬지 않고 호흡을 한다.
굵은 뿌리는 나무를 지탱하면서 나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 있다.
가는 뿌리는 물과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어리고 부드러운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통 1년 이내에 죽는다.
가는 뿌리는 연중 새로 만들어지며, 새로운 뿌리를 만들기 위해 세포분열을 왕성하게 한다.
뿌리는 이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호흡작용을 매우 활발하게 수행한다.
그런데 호흡작용에는 산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산소는 대기 중에 약 20%의 농도로 존재하지만, 땅속 깊이 들어갈수록 그 농도가 희박해진다.
따라서 가는 뿌리는 세포분열을 위해 산소 공급이 쉬운 토양 표면 근처에서 자라려고 한다.
우거진 숲에 가면 두꺼운 낙엽층 바로 밑에 가는 뿌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소 공급이 잘 되는 낙엽층에서 가는 뿌리가 숨을 쉬기 위함이다.
토양 깊숙이 내려갈수록 호흡을 왕성하게 하는 가는 뿌리는 그 숫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대신 호흡량이 적은 굵은 뿌리가 나무를 지탱하기 위해 뻗어 내려간다.
위와 같은 이유로 수목의 경우 겉흙(표토라고 부름) 20cm 깊이 이내에 가는 뿌리의 90% 이상이 존재한다.
가는 뿌리는 산소를 얻기 위해 밑으로 내려가기보다 대신 옆으로 뻗어가면서 근계(根系)를 수평 방향으로 확장한다.
이때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뿌리 발달이 둔화하기 시작한다.
뿌리가 주로 옆으로 뻗는 천근성 수종(예: 소나무와 아까시나무)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복토(覆土)는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뿌리 위에 흙을 덮는 행위이므로 뿌리에 산소 공급이 둔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복토가 나무 생장에 미치는 영향은 복토의 깊이와 흙의 종류(토성이라고 부름)에 따라서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토양 입자의 크기가 작아서 산소 공급이 안 되는 진흙(찰흙 혹은 점토)으로 50cm 정도 깊게 복토하면 나무는 수개월 내로 죽는다.
이 경우 소나무류가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대신 입자가 굵은 왕모래로 복토하면 산소 공급이 어느 정도 이뤄져서 그 영향이 훨씬 적게 나타난다.
어떤 종류의 흙이건 30cm 이상 복토가 되면 뿌리 생장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복토된 정이품송 밑동의 수피 중에서 3/4가량이 죽고 일부만 살아남아 있다.
복토 피해로 인한 초기 증상은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것이 새로 나온 잎의 황화현상과 왜소화 그리고 조기 낙엽이다.
더 진행되면 가지 끝부터 서서히 죽어 내려와서 마치 가지마름병 같이 보이면서 수관의 크기가 작아진다.
이때 뿌리도 함께 외곽으로부터 안쪽으로 서서히 죽어 들어오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아 초기 진단에 어려움이 있다.
복토는 뿌리의 발달 이외에도 땅속에 묻힌 나무 밑동의 껍질(수피)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그 영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진행된다.
수피가 땅속에 묻혀 과습으로 썩으면 잎에서 만든 설탕을 뿌리로 내려보내는 사부(篩部)조직이 붕괴되면서 설탕 이동이 중단되어 뿌리가 죽는다.
이러한 수피의 부패는 매우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나무가 완전히 죽는 데 2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복토로 인해 실제로 값진 수목이 큰 피해를 입은 경우는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예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사랑을 받고 있는 속리산의 정이품송이다.
정이품송은 1970년대 중반에 도로포장을 하면서 50cm 깊이로 복토가 되었다.
필자가 처음으로 심각성을 지적하여 10년이 지난 후 일부를 걷어내 살린 경우이다.
다행히 주변의 냇가에 있던 모래흙으로 복토되어 뿌리가 일부 살아남았고 수피가 일부만 썩어서 다시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미 훼손되었다.
천연기념물인 충북 보은의 백송(210년생)은 1m 깊이로 복토되어 20년 후에 별안간 죽었다.
나무가 완전히 죽은 예도 있다.
나이가 210년 된 충북 보은의 백송(천연기념물)인데, 20년 동안 약 1m 깊이로 복토되어 있었다.
비탈면에서 오랫동안 자라면서 뿌리가 노출된 것을 안타까워하던 주민들이 저지른 잘못이었다.
이 나무는 뿌리가 썩은 것은 물론이고 밑동 둘레를 따라 수피가 환상으로 썩어서 결국 죽고 말았다.
죽기 직전까지 20년 동안 멀쩡히 살아 있다가 더운 여름날 별안간 죽어서 미처 그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이다.
서울시 보호수인 정동의 회화나무(520년생)는 50cm 깊이로 복토되어 있던 것을 걷어낸 모습
심식(深植)은 나무를 옮겨 심을 때 예전에 심겨진 것보다 더 깊이 심는 것을 의미한다.
더 깊게 심는 이유는 큰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하려는 경우와 밑가지 없이 키가 크게 자라서 보기 흉한 나무를 키가 작게 보이려는 경우도 있다.
깊게 심어 수피가 묻히고 뿌리가 땅속 깊이 들어가면 복토한 것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복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무의 생리를 모르거나 비양심적인 업자에 의한 관행이다.
복토와 심식의 피해는 서서히 진행되지만 나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토목과 조경공사에서 설계를 담당하거나 현장을 감독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무를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에 해당한다.
건설현장에서 무지로 인해 오랫동안 이어온 복토와 심식 관행이 이 글을 통해서 없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출처:산림,글·사진 /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
복토와 심식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네요
이중에서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은
...복토(심식) 피해로 인한 초기 증상은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것이 새로 나온 잎의 황화현상과 왜소화 그리고 조기 낙엽이다.
더 진행되면 가지 끝부터 서서히 죽어 내려가서 마치 가지마름병 같이 보이면서 수관의 크기가 작아진다.
이때 뿌리도 함께 외곽으로부터 안쪽으로 서서히 죽어 들어오지만 겉이 보이지 않아 초기 진단에 어려움이 있다.
복토는 뿌리의 발달 이외에도 땅속에 묻힌 나무 밑둥의 껍질(수피)에도 영향을 준다. ...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잘안되는 부분입니다.
왜 잘 안될까요...
1) 나무식재시 장비의 의한 구덩이파기 및 식재에 따른 심식이 많습니다. 작업자(반장)에 대해서 식재전에 반드시 재교육을 통해서 깊게 인지시켜 줘야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물조임후 물집제거과정에서 흙을 덮혀서 심식이 됩니다.
3) 이후 잔디를 심거나 파종을 하기 위해서 면고르기를 하면서 다시 재복토가 됩니다.
각공종별로 작업자가 바뀌기 때문에 심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작업자에게 맞춤형 교육을 해줘야 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이것이 심식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뿌리분위로 절대 5cm이상 흙이 덮이지 않게 하라고..."
기본적으로 나무를 심을 때, 다소 보기흉하더라도 상식을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입니다. 식재당시에는 보기싫을 같지만, 물조임후 면고르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구요. 추후 나무주변에 관목이나 초화등의 하부식생이 심겨지기도 해서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명십하시자구요.
대형목의 경우는 짝분(기울어진 분)에 의한 한쪽편의 심식이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식재당시에는 우죽만 보고 모양을 맞추다 보니, 분의 모양은 놓치기 쉽습니다. 땅의 지형과 분의 모양이 정반대로 식재되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식으로 인해 수목이 2~3년 후에 고사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여 우죽만 볼것이 아니라, 분의 위치도 함께 고려한 식재를 해야겠습니다.
이글을 읽으며 다시한번 스스로를 재교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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