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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예술의 소재가 되다
가든 디자인의 역사를 새롭게 썼던 영국의 여성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이 완성한 헤스터콤 정원의 담장. 거트루드는 정원의 구조물인 담장에도 예술적 감각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덩굴식물을 이용해 식물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었다.
영국의 여성 가든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l, 1843~1932)에 대해서는 무수한 평가들이 있지만, 그중 그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은 ‘거트루드가 시력을 잃은 것이 정원 역사에는 크나 큰 축복이었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거트루드는 원래 화가였고, 자수 전문가였다. 그러나 마흔을 넘기면서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이로 인해 그림과 자수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녀가 제 2의 삶으로 선택한 영역이 바로 어릴 때부터 할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정원이었다. 그녀는 정원으로 눈길을 돌린 뒤, 식물을 예술의 소재로 재발견하기 시작했고,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감각을 토대로 이를 가든 디자인의 분야로 확대시켰다. 결론적으로 서양 정원 역사를 논할 때 거트루드 이전과 거트루드 이후로 구별이 될 정도로, 그녀는 가든 디자인 분야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었다.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과 거트루드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의 창시자였던 윌리엄 모리스가 살았던 ‘레드 하우스(Red House)’의 모습. 모리스는 대량생산을 거부하고,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지는 생활공예의 감각과 장인의 손맛을 중요하게 여겼다. 거트루드 지킬은 윌리엄 모리스의 아트 앤드 크래프트 개념을 정원에 도입해 건축물이 식물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다.
거트루드가 만들어낸 신개념의 정원 콘셉트는 바로 ‘예술의 정원’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 예술의 정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영국에서 일어났던 문화운동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Arts & Craft movement)’이 있었다. 1910년대, 이 운동의 창시자였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가 살았던 시기는 영국에 산업혁명이 몰아쳐 모든 것이 공장에서 기계에 의해 획일적으로 대량생산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획일성을 부정하고, 생활공예를 중심으로 중세의 장인정신, 즉 지역의 장인에 의해 아름다운 문양의 벽돌이 쌓이고, 아름다운 가구가 탄생하고, 손으로 그린 벽지가 장식됐던 그 아름다움을 되살리자는 운동을 펼친다.
이러한 정신을 정원이라는 분야에서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거트루드 지킬이었다. 그녀는 정원이라는 공간을 솜씨 좋은 장인이 도자기 작품을 빚어내듯 정성스럽게 연출했고, 그녀의 정원은 건축물과 식물의 결합으로 아름다운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 탄생했다.
정원의 주인공은 식물이다
푸르름 가운데 흰색 꽃의 색감이 돋보이도록 만들어진 헤스터콤 정원의 화단. 거트루드 지킬은 식물 자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췄던 최초의 가든 디자이너로, 식물의 꽃, 잎, 줄기 등이 지니고 있는 색감과 질감을 이용해 정원을 디자인했다.
물론 거트루드 이전에도 정원은 만들어졌고, 그녀보다 더 뛰어난 솜씨의 조경가도 많다. 그러나 거투루드를 오늘날 가든 디자인의 창시자로 첫손에 꼽는 이유는, 그간 아무도 시도한 적 없었던 ‘식물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거트루드 이전의 정원은 식물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조각물, 거대한 파빌리온(pavilion), 분수가 정원의 주인공이었고, 프랑스의 정원에서도 식물은 다듬고 깎아서 형태와 틀을 만드는 것으로 이용됐을 뿐 식물 고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은 없었다. 유럽 역사에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던, 요즘의 골프장을 연상시키는 자연스러움이 가득했던 영국식 풍경정원도 실은 식물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나무 심기를 통해 숲 속의 느낌을 연출할 뿐이었다. 이렇게 정원의 주인공이 식물이 아닌 상황에서 거트루드에 의해 식물이 색감에 따라 모아지고, 식물의 형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퍼고라와 아치를 만들고, 계단 옆에 일부러 빈자리를 만들어 식물이 피어나게 하는 등의 ‘디자인적 장치’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 조경과 가든 디자인의 차이점을 논할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부분이 바로 이 식물 디자인이다. 조경의 경우 식물 디자인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지만, 가든 디자이너에게는 거트루드가 그랬듯이 식물의 습성 하나하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계절적 느낌까지 살려서 식물을 조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트루드 지킬은 이러한 가든 디자이너의 역할을 제시한 선구적 디자이너였다고 볼 수 있다.
작가, 화가, 사진가, 디자이너... 다재다능한 거트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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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트루드 지킬. 그녀는 최초의 가든 디자이너이자 작가, 화가,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2 에드윈 루티엔스와 함께 거트루드 지킬이 영국은 물론 미국과 호주에서 유명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기에 쓴 첫 책의 표지.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시골 생활과 정원을 가꾸는 기쁨, 더불어 자신이 조성했던 가든 디자인 노하우에 대해 언급했다. |
거트루드를 단순히 정원사, 혹은 가든 디자이너로만 보기는 어렵다. 거트루드는 직접 정원에 식물을 심고 화단을 디자인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글로 남겼고, 이것을 정원전문잡지와 신문에 지속적으로 연재했다. 덕분에 그녀가 남긴 글이 천여 편이 넘을 정도다. 그 안에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적은 것들도 있고, 그녀가 하고자 했던 가든 디자인의 콘셉트를 식물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자세히 풀어놓은 것도 있다. 또, 그녀는 정원 일을 하면서 늘 사진기를 매고 다니면서 자신이 조성한 정원을 카메라에 잘 담아두어 사진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점은 당시는 컬러 필름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대부분이 흑백사진으로 남아, 그녀가 디자인한 색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거트루드가 단순히 유능한 정원사였다면, 그녀의 영향력이 정원 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정원 그 자체만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작가로서 또 사진가, 식물연구가, 화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펼치고자 했던 정원의 세계를 알렸고, 이것이 우리가 그녀를 진정한 가든 디자이너의 효시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와 거트루드의 만남
에드윈 루티엔스에게 거트루드는 스승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스물 여섯살 차이의 남녀였지만 이들은 거트루드가 죽은 순간까지 동업의 관계를 지속했다. 에드윈은 영국의 아트 앤드 크래프트 건축물의 대표주자로 정원에 있어서도 예술의 감각을 매우 중요시했다.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Edwin Lutyens, 1869~1944)는 거트루드 지킬보다 스물 여섯살이 젋은 청년이었다. 그에게 거트루드는 스승과 다름없었고, 실질적으로 가든 디자인의 모든 노하우를 거트루드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둘의 불가사의한 우정은 거트루드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었고, 에드윈이 정원 내의 건축물을 담당하고, 그 외의 공간에서 거트루드가 식물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환상의 조합을 자랑하며 당시 영국과 미국, 호주, 유럽의 400여 곳에 가든 디자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젊은 에드윈 루티엔스는 거트루드가 죽은 뒤에도 그녀를 위한 묘지 디자인을 직접 도맡았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애정을 계속 보여줬다. 훗날 에드윈은 영국 내 아트 앤드 크래프트 영향의 건축물을 무수히 디자인하면서 경(Sir)의 호칭까지 얻었던 당대 최고의 건축가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에드윈과 거트루드의 조화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거트루드는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방식의 식물 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 자유로움은 산과 들에서 식물 스스로 자유롭게 자라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것을 말했다. 즉, 에드윈이 매우 정형적인 방법으로 정원에 틀을 잡아 모양을 만들었다면, 거트루드는 그 안에 흐드러질 듯한 자연스러운 식물 심기를 통해 대조를 이뤄내곤 했다. 갇혀있는 듯 하면서도 흘러넘치고, 흘러넘치는 듯 하지만 정갈하게 다듬어지는 조화가 이들의 정원을 다른 어떤 것보다 차원이 다르게 만들었던 셈이다.
식물을 물감으로 사용하다
인상주의 화가의 팔레트를 연상시키는 거트루드의 식물 디자인 도면. 그녀는 식물의 크기, 일년의 성장 단계, 그리고 꽃을 피우는 시기 등을 정확하게 파악해 식물 디자인 도면을 그렸다. 이런 도면은 식물의 특징을 일일이 공부하지 않고서는 그릴 수 없는 것으로 그녀가 식물에 대해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익히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가 기하학적 문양으로 정원의 틀을 잡고 나면, 거트루드는 이곳에 어떻게 식물을 심을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화가 출신이었던 그녀가 가장 많이 사용했던 방법은 식물이 피워내는 꽃의 색을 물감처럼 활용하는 것이었다.
미술 시간에 배웠던 색감의 분류를 기억해보자. 빨강, 노랑, 주황색이 알록달록 섞여 있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따뜻한 색감(Warm colour)이다. 반대로 초록, 파랑, 보라, 흰색이 모여 있다면 앞서와는 다르게 색상 자체에서 ‘차갑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차가운 색감(Cool colour)인 셈이다. 이렇듯 색감이 지닌 따뜻하고 차가운 느낌을 거트루드는 식물의 꽃, 잎의 색감을 이용해 표현했다. 즉, 화단을 만들면서 따뜻한 색감의 꽃이 피는 식물과 차가운 색감의 꽃이 피는 식물을 모아 심어,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듯 화려한 색채의 화단을 만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꽃의 색상을 고려해서 화단을 조성한다는 것이 그리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거트루드 이전의 정원은 주로 남자들에 의해 조성되었고, 남성들의 정치ㆍ사회적 활동의 장으로 이용되었을 뿐, 여성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거트루드의 꽃의 색상을 이용한 그림과 같은 화단 디자인이 등장하자 정원에 획기적인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간 정원 디자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구조물을 세우거나 나무를 심는 것에 그쳤던 것이 ‘꽃을 찾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거트루드의 화단에 매료되어 아름다운 색상의 꽃을 찾는 일에 혈안이 되었고, 이로 인해 꽃시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다. 또한 훗날 거트루드의 영향이 영국을 벗어나 유럽과 미국으로 번지면서 전 세계는 물과 나무 중심의 정원에서 꽃의 정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비단 가든 디자인 분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만약 거트루드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화려한 꽃을 지닌 초본 식물의 발달을 보기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거트루드와 에드윈의 헤스터콤 정원 디자인 원리
헤스터콤 정원(Hestercombe House & Garden)은 거트루드와 그녀의 파트너였던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가 직접 디자인하고 시공한 정원으로 몇 년 전, 거트루드 당시의 정원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다. 거트루드의 디자인은 무려 400여 개가 넘지만 실제로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정원은 매우 드물다. 이유는 식물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거트루드는 식물이 피워내는 색감을 이용하기 위해서 초본식물 위주의 화단을 조성했는데, 초본 식물은 그 수명이 거의 대부분 10년 미만인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흐르면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고, 더불어 관리에 실패하면서 화단의 형태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거트루드가 남긴 많은 서적과 도면을 바탕으로 그녀의 식물 디자인이 재현되고 있고, 그 가운데 영국 남서 지방에 위치한 헤스터콤 정원이 있다.
1. 건축적으로 가두되, 식물은 자연스럽게
건축가였던 에드윈 루티엔스는 정원을 정확하게 갈라 형태를 잡아주었고, 거트루드는 여기에 식물을 흐드러질 정도로 풍성하게 심어 자연스러운 효과를 가미,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
거트루드의 가든 디자인 대부분은 그의 파트너 루티엔스에 의해 시공이 이뤄졌다. 루티엔스는 거트루드의 주문에 따라 정원을 직선과 원, 삼각형 등으로 가르거나 모아서 식물을 심을 자리(화단)와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장소(오솔길, 산책로)를 정확하게 구분 지었다. 이런 디자인은 다분히 딱딱하고 지나치게 닫힌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여기에 거트루드는 꽃이 화려한 초본 식물을 한데 뭉쳐 흐드러지게 심어서 그 경계선이 부드럽게 뭉개지는 듯한 느낌을 만들었다. 결국 틀 안에 식물을 가두기는 했지만, 식물 스스로가 그 틀을 살짝 넘어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러움과 인공적인 건축적 느낌이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런 거트루드의 디자인은 지나치게 많은 꽃을 사용하는 단점을 극복함과 동시에, 꽃이 지고 난 후 화단이 비어있을 때에도 정확한 구획 정리로 흐트러지지 않게 보이는 디자인적 효과를 보여준다.
2. 식물의 색감을 최대한 활용하라
담장에 피어난 흰색과 연분홍색의 초본 식물. 거트루드는 식물을 색상별로 쓰는 것을 가장 좋아했고, 특히 꽃의 색감을 즐겨 사용했다.
화가였던 거트루드는 누구보다 색채에 민감했다. 그녀는 식물을 차가운 느낌, 따뜻한 느낌 등으로 구별하고 여기에 맞게 식물을 그룹으로 식재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꽃이 피는 시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인데, 거트루드는 이 부분에 있어서도 사계절 적절한 안배를 통해 한 꽃이 지고 나면 다음 달에 다른 꽃이 또 피어날 수 있도록 식물을 골고루 식재했다. 이 방식은 지금도 영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화단 조성 시 교과서처럼 참고하고 있는 방법으로, 이를 위해서는 식물에 대한 철저한 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거트루드는 누구보다 식물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가 많았던 사람으로, 디자인을 할 때에도 식물에 대한 그녀의 지식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식물의 색감에 질감을 더하기
거트루드는 ‘곱다’, ‘성글다’, ‘가늘다’, ‘굵다’와 같은 식물의 질감을 정원 디자인에 이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꽃과 잎이 작은 식물은 한꺼번에 뭉쳐놓으면 고운 면직물 혹은 비단결을 보는 것처럼 곱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선이 굵직한 식물을 모아 심으면 시원하면서도 무게감이 있는 정원 연출이 가능해진다.
식물은 고유의 잎과 꽃의 색상을 지니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식물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의 질감도 매우 다르다. 질감이라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성글다’, ‘곱다’로 표현을 바꾸어도 좋을 듯하다. 잎이 크고 넓적한 식물이 무리지어 있다면 여기에는 분명 ‘성글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러나 잎이 코스모스처럼 가늘고 얇다면 이 경우는 ‘결이 곱다’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느낌이 식물의 질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거트루드는 키가 크고 잎이 크며 성근 느낌을 주는 식물과 잎과 꽃이 작고 가늘고 얇게 느껴지는 질감으로 식물을 구별하고, 때로는 대조되게 이웃해서 심는 방법으로, 때로는 같은 느낌을 묶어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정원을 디자인했다.
4. 정원을 형태로 구별하다
담장에 공간을 두어 관목식물이 풍성하게 피어나도록 구성한 거트루드 지킬의 디자인 방식. 그녀는 장소에 따라 적합한 정원의 스타일을 만들낼 줄 알았다.
거트루드 가든 디자인의 대표작은 역시 꽃의 색감을 이용한 화단 구성이지만, 그녀가 화단 디자인에만 집중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큰 나무를 무리지어 심어 숲 속 분위기를 연출하는 숲 속 정원(Woodland garden), 건물과 인접해 있는 테라스에 구성하는 테라스 가든(Terrace garden) 등 장소에 적합한 다양한 형태의 정원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거대한 정원을 하나의 도화지로 생각하고 그 안에 모든 것을 넣으려고 했던 기존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장소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살려 때로는 나무만을 사용하고, 때로는 꽃만을 이용하는 등 하나의 정원 안에서도 다양한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정원이 존재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한 방식 역시도 거트루드가 새롭게 시도한 디자인으로, 후에 가든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5. 건축물과 식물의 조화를 이뤄내다
에드윈 루티엔스가 지은 건물과 파빌리온, 계단에 거트루드는 자연스럽게 식물이 파고들도록 디자인을 넣었다. 담장을 타고 있는 매그놀리아와 수국의 성근 느낌과 계단 밑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멕시칸 데이지가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과 자연의 화합을 보는 듯 새로운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만약 이 사진 속에서 건물만 그대로 두고 식물을 다 빼내버린다면 건물의 아름다움은 반 이상으로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에게 거트루드는 위대한 스승이었지만, 거트루드 자신도 루티엔스 없이는 그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두 사람의 결합은 환상적이었는데, 루티엔스가 남성적인 느낌이었다면 거트루드는 여성적이었고, 그가 딱딱하고 무거운 물성으로 정원에 무게감을 주었다면 그녀는 그곳에 식물을 얹어 딱딱함을 부드럽게 감쌀 수 있도록 만들었다.
헤스터콤 정원에는 담장, 퍼고라, 계단 등 건축적인 요소가 매우 많다. 자칫 이것만으로는 정원이 무거워질 수 있는데, 거트루드는 식물이 담장 사이에서 피어나거나, 계단 옆에서 꽃을 피우고, 장미와 등나무가 퍼고라의 지붕을 덮게 하는 식으로 식물과 건축물의 조화를 아름답게 만들어냈다. 그녀는 정원을 자연 그 자체로 보았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예술의 영역으로 봤고, 그 예술성의 완성을 식물과 인간의 영역인 건축물과의 조화로 보았다. 그런데 이때 건축물은 단순한 집 짓기가 아니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석공의 정성으로 한 줄 할 줄 쌓인 돌담,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퍼고라의 장식 등 장식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었다. 바로 이런 점이 거트루드와 루티엔스의 정원에서 느껴지는 아트 앤드 크래프트 가든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거트루드 지킬에게서 배운다
에드윈 루티엔스가 만든 분수에 거트루드가 담쟁이를 덮어 자연적 요소를 더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한 디자인.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의 건축물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거트루드 지킬이 살았던 시기는 클로드 모네, 고흐, 고갱 등 후기 인상주의 화가가 활동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문화는 어느 하나가 도드라지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 미술, 철학 등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가는 것이다. 시시각각 빛의 변화에 민감했던 인상주의의 시선은 정원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살아있는 존재인 식물은 하루하루 그 모습을 달리하고, 꽃과 잎도 그날그날에 따라 달라진다. 거투드르는 이런 식물의 세계를 열심히 탐구했고, 자신의 노하우를 가든 디자인에 녹여 내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꽃이 얼마나 아름답게 우리의 정원을 장식 할 수 있는지를 몰랐을 것이고, 육중한 건물이 정원과 얼마나 조화롭게 나란히 설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도 터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떠난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가 그녀의 가든 디자인에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글/사진
-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
- 글쓴이 오경아는 16년 간의 방송작가 활동을 접고 2005년 영국으로 가든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친 뒤,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조경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2012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는 <오가든스>라는 정원관련 종합회사를 설립해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속초에서 정원학교를 운영중이다.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정원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의 저자이며, 정원을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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